30일 경북 영주시 장수면 갈산1리. 마을 입구에 이르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야트막한 주택들 사이로 고추 밭이 군데군데 펼쳐져 있었다. 승용차 1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따라 10분가량 들어가자 마을 풍경과는 이질적인 모습을 한 이시갑(40)씨의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집 주변과 옥상에는 지름 45㎝∼2.6m가량의 원형 안테나 85개가 제각각 다른 방향의 하늘을 보며 세워져 있었다. 대부분이 둥근 쟁반모양이었지만 하늘에 거미줄이 쳐져 있는 듯한 모습의 것도 볼 수 있었다. 이씨는 "지구 바깥쪽에 떠 있는 태국, 미국 등 각 나라의 위성들이 쏘는 전파를 받기 위해 직접 설치한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 ▲ ‘안테나맨’이시갑(40)씨가 30일 경북 영주 자신의 집 주변에 설치된 85개의 원형 안테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이씨 방으로 들어가자 한쪽엔 29·32인치 TV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고 주변엔 안테나에서 전달되는 전파를 TV로 전달하는 셋톱박스 11대가 설치돼 있었다. 또 TV리모컨 11개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TV 쪽 벽면엔 스피커 5개가 붙어 있었다. 그가 TV를 켜고 리모컨을 누를 때마다 화면 속에는 미국의 뉴스 진행자, 춤을 추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 등이 차례로 나타났다.
이씨의 집 주위에 원형 안테나들이 설치되기 시작한 건 1992년부터. 그는 "세계 각국의 여러 음악을 듣고 싶었는데 여건이 여의치 않아 안테나를 설치해 TV로 직접 볼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길로 서울 용산 등지를 찾아 안테나를 구입하고 인터넷에서 설치방법을 익혀 집 주변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모두 3000여 만원을 들여 85개의 안테나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미국, 프랑스, 인도 등 100여 개국에서 방송되는 1500개의 위성채널을 확보했다. 이씨는 "처음엔 외국어를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오래 듣다 보니 이제 영어와 일어는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다"며 "하지만 농사일을 끝낸 후 음악을 맘껏 듣고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공연도 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작년부터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위성방송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특별한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국내로 시집온 외국여성들의 향수병을 달래주기 위해 그들의 집에 위성 안테나를 달아주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회원 30여명은 작년 10월 강원도 양구를 찾아가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서 시집온 다문화가정 4가구에 안테나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경기도 가평, 경북 영주·안동 등지를 돌며 지금까지 모두 15가구를 대상으로 이 같은 활동을 펼쳤다. 안테나 등 설치에 필요한 재료는 뜻을 같이한 생산업체 2곳으로부터 지원받았다. 7월엔 충북 제천을 찾아 이 같은 활동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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